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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원 창건 상량문>과 <선우공제회 취지서> 그리고 <법인재산 환수 승소 판결문> 을 살펴보면 민족불교의 선양과 불조정맥 계승의식 그리고 일제의 사찰정책에 항거했던 스님들의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1921년 친일성향의 사판계(事判系)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남전 도봉 석두스님 등 민족불교선각자들은 3·1운동으로 투옥되었던 이판계(理判系)의 지도자 만해 스님의 출옥에 앞서, 만해 스님을 중심으로 임제종 운동의 계승과 전통 선풍을 진작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에 이판계의 수도원(修道院)을 창립하고자 당시 최창훈 외 다수 신도의 기부받는 한편, 임제종 인사동 포교당의 자재와 기와를 기부 받아 안국동 40번지에 수행도량을 건축하였습니다. 일제의 사찰정책에 대항하려는 수좌스님들의 희망과 노력은 1922년 3월 30일에 ‘선우공제회’ 건립으로 결실 맺게 되었습니다. ‘오성월, 김남전, 백용성, 한용운’ 등 35명의 발기인 명단에서 살펴볼 수 있듯, ‘선우공제회’는 선풍진작과 민족불교의 자주·자립적 기치를 사명감으로 삼아 창립되었습니다. 민족불교 수호를 위한 임제종 운동의 숭고한 의지를 계승하는 한편, 수좌스님들의 안정된 수행도량을 마련하고 대중포교의 토대 마련을 위해 설립된 ‘선우공제회’는 자립자애와 중생구제의 기반을 세운 한국 불교계의 희망이었습니다.

당시 일제에 의해 모든 사암(寺庵)은 사찰령(寺刹令)과 사법(寺法)의 직간접적인 통제를 받아야 했던 시대였습니다. 본말사의 주지취임을 포함하여 법회개최를 비롯한 동산·부동산 변동의 소소한 내용까지 일제 총독부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선학원 스님들은 '사(寺)'나 '암(庵)' 등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일제의 불교정책에 대항하는 한편 후대를 위한 초석을 마련하였습니다.

이판계의 수도원(修道院) 선학원은 일제의 여러 탄압과 분란책을 이겨내며 견디어 왔습니다. 조선총독부에서는 정책적으로 무거운 중과세를 부과하여 운영난을 맞도록 유도한 후 친일단체를 통해 선학원을 장악하고자 여러 교묘한 방책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법인 재산을 친일단체에 분산매각한 후 종국에는 항일민족불교의 산실을 파괴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후학양성과 수행정진을 위한 터전이 일제에 의해 해체되거나 흡수될 위기에 처하자 선학원 수좌들이 나섰습니다. 수좌스님들은 1922년에 신탁(信託)의 취지로 선학원 건물을 범어사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 경유(經由), 그리고 2년 후인 1924년에 역시 범어사 명의로 선학원이 소유한 대지를 소유권이전등기를 경유하여 후학양성의 자량(資糧)을 지키기 위한 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하였습니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1926년에 범어사 포교당으로 전환하여 선학원은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5년 후인 1931년에 적음스님이 이를 인수하여 재건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때 납자들의 결속과 선풍진작을 위한 수좌회의를 열었으며, 만해스님이 구심점이 되어 발간한 선학원 불교잡지 <선원(禪苑)>을 통해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포교가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남녀선우회의 성공적인 개최와 부인선우회의 정기적 개설이 이루어졌으며, 안국동 41번지 대지와 건물을 선학원 부인신도들이 1932년에 매입, 신탁의 취지로 범어사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유하여 수행도량을 지혜롭게 지켜나갔습니다.

친일적 사판계에서 ‘재단법인조선불교총무원’을 설립한 바, 이판계 선학원에서는 보다 조직적인 대응의 필요성을 절감하였습니다. 만공스님과 여러 신도들의 기부로 재원을 확충하여 1934년 12월 5일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으로 인가를 냈습니다. 이어 이듬해인 1935년 3월 7일에 한국불교의 선맥을 지키기 위해 ‘조선불교전국수좌대회’를 개최하여 ‘조선불교선종종무원’을 발족시켰습니다. 이에 선학원은 조선불교선종의 종정으로 만공, 한암, 혜월스님을 추대하였습니다. 1941년 2월 26일부터 10일간 승가의 청정승풍과 불조 이래의 전통선맥을 선양하기 위해 만공, 한영, 동산 등 청정비구 34인이 참석한 ‘유교법회(遺敎法會)’를 선학원에서 개최하였고 ‘범행단’이 조직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재단법인 선학원은 식민지 불교정책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민족불교의 지도자 만해스님을 중심으로 저항의 기치를 올려왔고, 일제의 사찰령을 견제하며 수좌스님들이 임제종 운동의 전통을 의연히 수호해 온 불교계 독립운동의 터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