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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 05. 15 석왕사(함경남도 안변군) 경성포교당, 선학원 설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보살계 계단 개최
1921. 08. 10 도봉(道峰)·남전(南泉)·석두(石頭) 스님 등 민족불교 선각자들은 당시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있던 이판계의 수장 만해스님을 중심으로 민족불교를 수호하고 독립운동을 위해 서울 안국동에 ‘조선불교 선학원 본부(朝鮮佛敎 禪學院 本部)’를 기공
1921. 10. 04 범어사 경성포교당의 포교사인 남전(南泉), 석왕사 경성포교당의 포교사인 도봉(道峰), 그리고 범어사 승려인 석두(石頭) 등 3인을 중심으로 서울 안국동 '조선불교 선학원 본부' 상량식
1921 선학원 설립시 전경
1921. 11. 30 '조선불교 선학원 본부' 준공
  선학원은 사찰령 발표 이후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개탄, 불조의 정맥을 굳게 계승키 위해 창설된 선종의 중앙기관이다.
처음 발기인은 남전(南泉), 도봉(道峰), 석두(石頭) 등 세스님이 주도하였지만, 선학원 창건 상량문의 발기자 명단은 용성(龍城), 성월(惺月), 도봉(道峰), 석두(石頭), 남전(南泉) 등이다. 총계 25,500원의 자원금으로 1921년 8월 10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불과 3개월 만인 11월 30일에 준공·입주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청정수좌들의 중앙기구가 되고 있다.
1922. 03. 30 ~ 04. 01 선학원에서 선종의 부활과 자립 활로를 위한 선우공제회(禪友共濟會) 창립 총회 개최
  용성(龍城), 남전(南泉), 석호(石虎), 성월(惺月), 만공(滿空), 용금(龍昑), 학명(鶴鳴) 외 79인의 발기로 시들어가는 선종의 부활과 선승들의 상호부조 내지는 자립활로를 개척하기 위해 조직하였다. 본부를 안국동 선학원에 두고 서무부, 재무부, 수도부의 3부를 중앙에 두고, 백양사, 마하연, 정혜사 등 각 사찰에 지부를 두어 유대를 긴밀히 하고, 중앙의 수도부이사로 만공(滿空), 서무부이사로 적음(寂音), 재무부이사로 석두(石頭), 그리고 성월, 학명, 도봉 등 20여명의 평의원을 선출하여 수도와 제반사무를 관장케 하였다.
1922. 11 선학원을 범어사 명의로 신탁 등기
1922. 11. 03 선학원에서 선우공제회 임시총회 개최, 임시의장으로 석호(石虎) 피선
1923. 03. 29 '선학원 선우공제회 사무소에서 제2회 정기총회 개최
  수도부이사 도봉(道峰), 서무부이사 석호(石虎), 재무부이사 환옹(幻翁) 선출
1922 선우공제회 취지서
1923. 09. 06 사단법인 선우공제회 설립허가원 제출
1923. 12. 20 총독부 학무국이 사단법인 선우공제회 설립허가원 반려
1923. 12. 25 사단법인 선우공제회 설립허가원 재접수
1924. 11. 15 선우공제회, 제3회 정기총회 개최
  선학원 선우부인회(禪友婦人會) 조직, 부인회관을 요사채 외측에 건립하고 여성불자들의 정진도량으로 개방.
1926. 05. 01 선학원, 재정빈곤으로 범어사 포교당으로 전환
1926. 05 용성진종(龍城震鐘) 등 127명 승려, 총독부에 승려 대처식육 금지 제1차 건백서 제출
1926. 06. 09 만해 한용운, 송세호 6·10 만세 운동 사전 검속으로 선학원에서 체포되어 종로서에 수감
1926. 09 용성진종(龍城震鐘)의 대처식육 금지 제2차 건백서
1930. 04. 01 승적법·승려법 반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