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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01. 21 초부적음(草夫寂音), 선학원을 재건하기 위하여 인수
1931. 03. 01 남녀선우회(男女禪友會) 조직, 회원 70여인
1931. 03. 07 ~ 08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에서 조선불교 전국수좌대회 개최, 종무원원규와 규약을 제정, 종정, 원장, 이사, 선의원 등의 의원 선출
1931. 03. 14 전선수좌대회(全鮮首座大會) 소집문 발송
1931. 03. 21 부인선우회 총회
1931. 03. 23 선풍진작과 납자들의 결속을 위하여 선학원에서 전선수좌대회(全鮮首座大會) 개최, 선방 수좌들의 보다 나은 공부를 위해 청정사찰 할애 및 중앙선원 설치 등의 건의안 작성, 재건된 선학원에서 개최된 최초의 수좌 모임
1931. 03. 25 초부적음(草夫寂音), 교무원종회에 건의안을 제출하고 설명
1931. 03. 27 교무원종회에서 중앙선원 설치건의에 대해서 찬의는 표하였으나 예산부족으로 부결
1931. 04. 21 부인선우회 총회
1931. 09. 08 만주사변 발발
1931. 10. 06 『선원(禪苑)』 창간
1931. 11. 12 부인선우회 정기회
1931. 11. 16 초부적음(草夫寂音), 범어사본산총회에 매년 육백원 본 선원(本禪院) 경비보조를 청구하였지만 본산경제곤란으로 인하여 매년 이백원으로 가결
1932. 02. 01 『선원』 2호 발행
1933. 01. 04 선학원, 전국승려대회 개최, 종헌 발포기념식 거행
1933. 08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 재단법인 설립인가 신청
1934. 12. 05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 총독부로부터 설립허가
  초대 이사장 만공월면(滿空月面), 부이사장 한암(漢巖), 상무이사 적음(寂音), 이사 남전(南泉), 성월(惺月), 감사 서호(西湖), 탄옹(炭翁)
선학원 원장 성월(惺月), 고문 경운(擎雲)

조선불교 선리의 수행과 연구에 의하여 승려 및 일반 신도에게 정신적 수양을 베풀기 위한 각종 시설을 하려는 것이 법인 구성의 목적이며, 재단법인이 설립됨으로써 선학원은 명실공히 중앙선원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선학원은 창건이후 선학원 자체에 의한 자력구제 방안을 꾸준히 강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재단법인의 설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1934. 12. 20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설립등기
1934. 12. 30 선학원 계열의 수좌, 조선불교선종 종헌 제정
1935. 01. 05 조선불교선종 종헌 반포, 대표 종정 만공
  전국수좌대회 조선정통수도승 일동은 조선불교선종 종헌의 선서문에서 한국불교의 선(禪) 전통을 일본불교의 침탈로부터 수호할 것을 밝히고 있다. 이때 조선불교선종 대표 종정은 만공월면(滿空月面), 종무원장은 운봉(雲峰), 총무부장은 적음(寂音), 교무부장은 동산(東山), 재무부장은 남전(南泉)
1935. 10. 15 『선원』 통권 4호로 종간
1936. 01. 15 성월일전(惺月一全),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제2대 이사장 추대
1936. 05. 17 남전한규(南泉翰圭) 입적
1938. 03. 23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전국수좌대회 소집
1934년 조선불교선종 종헌 선서문
  선학원 선우부인회(禪友婦人會) 조직, 부인회관을 요사채 외측에 건립하고 여성불자들의 정진도량으로 개방.
1939 '조선불교선종정기선회(朝鮮佛敎禪宗定期禪會)'
  조선불교선종정기선회에서는 다음의 내용을 논의하고 결의하였다.

첫번째, 초참납자의 지도를 위한 모범선원으로 금강산 마하연 지정의 건이다.
두번째, 불교계 중앙기관인 교무원에 청정사찰 할애의 요청 문제이다.
세번째, 수행납자의 질병 구호에 관한 것이다.
네번째, 지방선원의 방함록을 중앙에 보고하는 것 등이 중심내용이다.
1941. 용성진종(龍城震鐘), 대각사에서 입적
  개회된 유교법회
1941. 02. 26 정승풍 진작을 위한 고승 34명 초청, 유교법회 개최
  만공(滿空), 석상(石霜), 서응(瑞應), 묵담(默潭), 한영(漢永), 동산(東山), 운허(耘虛), 청담(靑潭), 석주(昔珠), 한암(漢巖) 등 청정비구 34인이 참가하였으며, 법망경·유교경·조계종지에 관한 설법을 하였다.
유교법회 후 비구승으로 결성된 범행단(梵行團)을 조직하고 선학과 계율의 종지를 선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1941. 03. 16 제2회 조선불교선종정기선회 개최 및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이사회 및 평의원회 개최
1942. 04. 01 초부적음(草夫寂音),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제3대 이사장 추대
1942. 10 선학원에서 만해 한용운, 성월일전(惺月一全), 만공월면(滿空月面) 등 8명 납자가 발기하여 『경허집(鏡虛集)』발간
1943. 08. 09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제2대 이사장 성월일전(惺月一全), 범어사에서 입적
1944. 06. 29 1944. 6. 29 : 만해 한용운, 심우장(尋牛莊)에서 입적
1944. 07 1944. 7 : 덕성학원, 선학원 부인회관 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