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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사찰정책에 항거했던 선학원 조사스님들은 임제종 운동의 선풍을 이음과 아울러, 3·1운동으로 당시 옥고를 치르고 있던 만해 용운스님의 출옥에 대비하여 1921년 10월 4일 ‘조선불교 선학원 본부’ 상량식(서울 안국동)을 봉행하여 선학원을 건립했다. 두 달 후 출옥한 만해 용운스님을 중심으로 남전 한규 · 도봉 본연 · 석두 보택스님 등 민족불교 지도자들은 선학원에서 보다 조직적으로 일제에 항거하는 한편, 한국전통불교 수호와 후학양성에 매진하였다.

선학원 설립의 한 축을 담당했던 석두 스님은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고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 9월4일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화대동에서 태어났다.

16세때에 안변 석왕사 백하스님은 보택(寶澤)을 법명으로 내리고 출가를 허락했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 헌납(1919년) 등 항일운동에도 관여했고, 선학원 선우공제회 재무부 이사(1922년), 조선불교유신회 사찰령 철폐 건백서 대표(1922년), 선학원 선우공제회 평의원(1924년) 등을 역임하며 한국 선불교의 중흥을 꾀했다.

송광사 삼일암에 주석하며 부도암에 선원을 개설했다. 순창 순평암에 머물다 해방을 맞이했다.

71세 되던 해에 몸이 불편하여 미륵도 미래사로 주석처를 옮기고, 1954년4월25일 오후8시30분(세수73세, 법납57세)열반에 들었다.
1882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출생
1898 안변 석왕사에서 출가
1919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 헌납
1921 선학원 남전, 도봉스님 등과 선학원 설립
1922 선학원 선우공제회 재무부 이사
1922 조선불교유신회 사찰령 철폐 건백서 대표
1924 선학원선우공제회 평의원
1954 세수73세, 법납57세로 미륵도 미륵사에서 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