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선학원소개 | 설립조사     
일제의 사찰정책에 항거했던 선학원 조사스님들은 임제종 운동의 선풍을 이음과 아울러, 3·1운동으로 당시 옥고를 치르고 있던 만해 용운스님의 출옥에 대비하여 1921년 10월 4일 ‘조선불교 선학원 본부’ 상량식(서울 안국동)을 봉행하여 선학원을 건립했다. 두 달 후 출옥한 만해 용운스님을 중심으로 남전 한규 · 도봉 본연 · 석두 보택스님 등 민족불교 지도자들은 선학원에서 보다 조직적으로 일제에 항거하는 한편, 한국전통불교 수호와 후학양성에 매진하였다.

1864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백상규(白相奎).

손상좌인 도문스님이 생가인 장수 죽림리에 죽림정사를 창건했다. 14세 때 남원 덕밀암으로 출가했다 가족들의 만류로 되돌아 온 용성스님은 16살 되던 해 합천 해인사로 다시 출가해 화월(華月)스님을 은사로 모셨으며, 환성(喚醒)스님의 법을 이었다.
화엄경을 처음 한글로 번역하는 등 한문 경전을 우리말로 옮기는데 관심을 쏟았다. 박한영(朴漢永)스님과 함께 불교잡지 ‘불일(佛日)’을 간행하는 한편 일요학교를 개설하는 등 문서포교와 어린이포교에도 앞장섰다.

일본불교 영향을 받은 조선불교계 일부가 계율을 소홀히 하고 대처를 합리화 하는 것에 반대해 조선불교 혁신을 꾀했다. 1940년 2월24일(세수77세, 법랍62세) 서울 대각사에서 입적했다.

1962년 국가공로훈장, 1990년 은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았다. 저서로 <용성선사어록> <귀원정종> 등이 있다.
1864 전북 남원 출생
1879 합천 해인사에서 출가
1919 3·1운동 민족대표 참여
1926~27 '화엄경' 80권을 한글로 번역
1940 세수 77세, 법납 62세로 서울 대각사에서 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