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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사찰정책에 항거했던 선학원 조사스님들은 임제종 운동의 선풍을 이음과 아울러, 3·1운동으로 당시 옥고를 치르고 있던 만해 용운스님의 출옥에 대비하여 1921년 10월 4일 ‘조선불교 선학원 본부’ 상량식(서울 안국동)을 봉행하여 선학원을 건립했다. 두 달 후 출옥한 만해 용운스님을 중심으로 남전 한규 · 도봉 본연 · 석두 보택스님 등 민족불교 지도자들은 선학원에서 보다 조직적으로 일제에 항거하는 한편, 한국전통불교 수호와 후학양성에 매진하였다.

출가후 직지사에서 수선 안거를 한 적음 스님은 1922년 3월30일부터 4월1일까지 경성 선학원에서 열린 선우공제회 총회에서 서무부 이사로 추대됐다. 1927년에는 직지사에서 사교과를 마쳤으며, 1930년에는 만공(滿空) 스님에게 입실 건당했다. 이때 초부(草夫)라는 법호를 받았다.

1931년 선학원 상임포교사 소임을 맡았으며, 1932년 부산 범어사에서 도첩(度牒)을 받았다. 1934년 조선중앙선리참구원 상무이사를 거쳐, 선학원 3대, 5대 이사장을 역임하며 조선불교 수호에 앞장섰다. 조선불교문화운동협회 경리(經理) 소임을 보았다.

1935년 1월5일 조선불교선종 종헌 반포 당시 총무부장에 취임했다. 1941년에는 조선불교 정통성을 회복·계승하기 위해 개최된 유교법회에 동참했다. 같은 해 범행단(梵行團)을 결성해 청정비구승단의 기초를 닦았다.

해방되던 해 12월17일 정토종 본원사에 호국역경원을 설립하고 초대 원장에 취임했다. 1947년 1월에는 해동역경원을 설립하고 역시 초대 원장에 취임했다.

1950년 4월20일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제5대 이사장으로 추대됐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 6월24일 정화운동 발기인대회에서 부위원장으로 선출됐고, 이튿날 교단정화추진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됐다.

1955년 공주 마곡사 주지로 취임했고, 1956년 3월에는 선학원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노년에 병고를 겪은 스님은 1961년 10월3일 세수 61세, 법납 39세로 서울 선학원에서 입적했다. 제자로는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과 동국대 이사장, 공주 신원사 조실을 역임한 벽암(碧岩) 스님이 있다. <적음집>이 발간됐다는 구전이 전해오지만 실체는 확인할 수 없다.

1900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 불로동 출생
1922 선학원 선우공제회 서무부 이사
1924 김천 직지사에서 제산스님을 은사로 득도
1934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상무이사
1942~46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제 3대 이사장
1945 호국역경원 초대 원장
1950~60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제 5대 이사장
1955 마곡사 주지
1961 선학원에서 세수 61세, 법랍 37세로 입적